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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

막내의 받아쓰기

by piushong 2015. 5. 21.

1학년을 다니고 있는 막내는 아직 한글을 잘 모른다.


막내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에게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많이 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고..

막상 글을 몰라도 자연스레 스스로 글을 깨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아이에게 글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런 막내가 학교를 들어간지 두어달이 지난 무렵부터, 받아쓰기 시험을 매주 1~2회씩 보고 있다.

가벼게 가, 나, 다... 같은 글자는 읽고 쓰던 녀석이 이제는 '힘껏' '잡아등겼다' '끊어졌다' 같은 복합적인 글자를 받아 써야한다.


막내는 당연히 지난 몇번의 받아쓰기 점수는 역시나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매번 방과후에서 틀린 문제를 숙제로 해야만 했다.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사교육이나 가정교육에서 알아온 것을 검증만 하는 공교육을 욕만 할 수는 없는 노릇..


특단의 대책으로 저녁에 아이를 앉혀놓고 시험 공부를 시켰던 적이 있다.

일단 10개의 문장을 받아쓰고, 틀린 글자를 체크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글자를 쓰게 했다. 


그렇게 한시간이 넘게 흘렀다.


중간중간 막내는 눈물을 훔치면서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워 계속 받아쓰기를 했다.

다음날 막내는 80점을 받아왔다..


오늘도 막내의 받아쓰기 시험이 있는 날이다.


어제 막내를 앉혀놓고 다시 11급에 해당하는 10개의 문장을 연습시켰다.

틀린 문제를 다시 반복 연습시키다 보니, 힘이드는지 막내는 받아쓰기 하는 중간 중간 연신 팔로 눈물을 훔쳤다.

호되게 연습을 시킨 것이 미안해서 아이에게 100점을 받아오면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빠: 100점 받아 오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막내: 정말?


아빠: 응.. 뭐 사줄까.. 아이스크림?


사실..막내가 아이스크림이나 요즘 유행하는 요괴워치를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막내: 그럼.. 선호랑 무료로 놀게 해줘..

(같은 아파트 사는 동갑내기 친구)


아빠: 우리 막내는 친구랑 노는게 가장 좋은가보네..

막내: 응..


순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학년짜리에게 아빠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아이가 친구랑 놀기위한 댓가로 고사리손에 힘을 주어가면서 한시간 넘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더이상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이만하자.. 그리고 100점 안맞아와도 괜찮아..

아빠는 우리 막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 그냥 그게 다야"


책을 덮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내내..

아이가 말한 소원이 맴돌았다..


우리 아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친구랑 무료로 노는 것이 참 어려운 세상이구나..

그리고 그런 세상을 내가 우리 막내에게 만들어주려고 했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미안해 우리 막내.. 사랑한다..!